1. 난폭하게 타오르는 아각
잘린 목 / 왕좌 / 왕좌 아래 쌓인 머리들 / 두루 도는 불의 검 / 화산



악마의 이름을 호명하자 불타는 돌이 비명을 지르며 실체를 드러냈다. 아각은 [3D66+6]개의 머리를 가졌으되 정작 자기 머리를 잃어버린 남자였다. 머리가 없어 텅 빈 모가지는 삭은 뼈의 말단을 흉측하게 내보이고 있었는데, 정작 그 몸이 앉은 피 묻은 왕좌 아래에는 온갖 머리가 새된 소리와 함께 짓눌려 있었다.
울부짖는 남자와 광기에 빠진 여자, 곤히 잠든 노인과 눈을 홉뜬 짐승. 왕의 권세를 드높이기 위해 깔리고 짓눌린 토대는 하나같이 피에 절어 썩은 시취를 풍긴다.
악의 징조가 뿌리내린 영역은 곧 아각의 영토였다. 주인이 도착하자 그 땅은 주인을 예비하는 것처럼 곧 형태를 변모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성채, 골짜기 아래 솟은 칼과 창, 피골이 상접한 소사체가 겨울의 자작나무처럼 팔다리를 벌린다. 스트롬볼리의 화산이 축포를 터트리는 것처럼 폭발하고 화산탄을 쏟아낸다. 끓는 불로 연단한 검이 왕의 주위를 두루 돌아다녔다.
2. 사무치게 후회하는 요나단
고깃덩어리 / 갈고리 / 창과 화살 / 흐르는 꿀



248번째, 마지막 계단에 서 있는 악마였다. 그것의 생김새를 논하자면 이랬는데, 우선 가죽을 벗겨낸 날고기 그 자체였다. 오랜 시간 부패가 진행됐는지 살점이 대부분 짓물러 있었고 어두운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풍기는 것은 시취가 아닌 달콤한 향기이니 모순적이었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고깃덩어리는 원형을 잃어버린 지 오래로 그저 기어다니며 울부짖는 벌레에 불과해 보였다. 주변을 날아다니는 이와 파리떼가 썩은 고기를 탐하고 있었고 등 뒤에는 화살과 창, 칼과 같은 날카로운 무기들이 도축장의 갈고리처럼 걸려 있었다. 구멍 난 자리마다 흘러내리는 액체는 역시나 황금빛이다.
끔찍한 생김새를 떠나서, 의문이 들었다. 머리가 없어 거기 달린 입도 귀도 없는 그것이 어떻게 그런 분에 찬 소리를 내었을까.
어디를 베어 내야 마땅할지 고민하는 사이, 악마는 천천히 아주 느리게 우리를 향해 엎드렸다. 죽음을 원하는 죄인 같기도 죄를 청하는 신하 같기도 항복을 바치는 패자 같기도 한 꼴이었다.
3. 버림받은 왕 사울
벌레로 구성된 왕의 형체 / 여섯 개의 레갈리아(왕관 / 망토 / 보검 / 왕홀 / 보주 / 왕좌)



왕의 이름을 부르자 하늘을 뒤덮었던 벌떼들이 여름의 유성우처럼 신속하게 떨어졌다. 비어 있던 왕좌로 몰려온 벌들은 날개와 날개를 엮어 거대한 악마의 형태를 완성한다:
벌의 황금빛 몸체는 왕의 머리를 장식한 금관과 어깨를 덮은 망토가 되었고 벌의 날카로운 침은 왕의 손에 들린 보검과 왕홀로 일어섰다. 벌의 투명한 날개가 왕의 품에서 보주로 뭉치니 남은 것은 검은 줄무늬뿐이었고,
눈을 한번 깜빡인 새에 보좌에는 온몸이 새카만 왕이 군림하고 있었다.
눈을 두 번 감았다 뜨자 성 파트리치오의 우물은 간데없고 왕의 알현실이 펼쳐졌다. 말로를 알지 못하는지 왕성은 화려하고 왕좌는 견고했다. 초대 왕의 주위를 군대와 백성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수하에 부리는 권속이 많아 왕좌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4. 거꾸로 매달린 압살롬
상수리나무 / 머리카락 / 창 / 꿰뚫린 심장 / 도망간 말



압살롬, Avshalom, אַבְשָׁלוֹם.
세 번 호명하자 번성한 석주나무가 흐느껴 울며 실체를 드러냈다.
압살롬은 나뭇가지와 머리카락을 하나로 엮은 형상으로 그가 곧 나무이자 나무가 곧 그였다. 뻗어나간 가지들에 황금을 꼬아 만든 금줄들이 치렁치렁 널려 있다. 누이의 눈물이 침식한 옹이는 불규칙하게 일그러져 어떤 것은 비명을 지르는 해골 같았고 어떤 것은 분노하는 악마 같았으며 어떤 것은 절망에 빠진 귀신 같았다. 뿌리는 없고 위에도 아래에도 가지만 무성한데 하나같이 성격이 포악하여 망나니처럼 날뛰었다.
악의 징조가 뿌리내린 영역은 곧 악마의 영토. 주인이 도착하자 그 땅은 주인을 예비하는 것처럼 곧 형태를 변모하기 시작했다: 검은 바다 위에 자리 잡은 그보다 검은 숲, 달빛에 의지해 항해하는 숲은 위대한 배, 그 자체였다. 소용돌이가 춤추고 유령이 회전한다. 하늘에서는 달빛 대신 종유석이 쏟아지고 지면에서는 새순 대신 석산이 자라난다.
5. 회개하는 대제 콘스탄티누스
해골 / 대주교의 예복 / 삼층 면류관 / 카이로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 / 언약궤(관)


사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죽지 않았다. 그는 세례를 받은 후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성 콘스탄틴 성당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오늘날 콘스탄틴 총대주교는 그다. 지난 1500년의 세월 동안 언제나 그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술로 연명한 신체는 진작 썩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콘스탄틴 총대주교가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건 이러한 이유.
중앙의 통로를 지나 다다른 끝에는 대주교가 서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 또한 성상의 하나인가 싶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 모자와 예복으로 전신을 틈 하나 없이 꼭꼭 감춰 두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수적이고 경건한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유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